수석이야기

[스크랩] 윤선도와 어부사시가

산은 산 2015. 5. 10. 21:16

                                        윤선도와 어부사시가

 

 

 

                                              안개 속에서도 고기를 낚는 어부

 

  어느 분이 홀연 어부사시가가 궁금해진다고 하였지요. 마침 함께 그곳에 갔던 형제 중에 윤선도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를 한 신부가 있어, 그에게 귀동냥을 한 것과 제 나름 자료를 찾고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윤선도와 그의 어부사시가에 대해 짧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안개 속에 매어 놓은 어부들의 배

 

  윤선도가 명리를 버리고 보길도에 들어가 신선처럼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은 그의 춘추, 65세이라고 합니다. 그 형제는 윤선도가 명리를 버렸다는 표현을 썼는데, 저는 조금 달리 봅니다. 그가 정적에게 밀렸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그의 정적은 우암 송시열이었지요. 송시열을 거두로 하는 노론들의 질시를 견디지 못한 윤선도는 고향인 해남으로 낙향했고, 거기서 가까운 보길도로 오게 된 것으로 봅니다.

 

 

 

                                                송시열의 글씨: 탁본한다고 망쳐놓은 모습

 

  재미있는 것은 후에 우암 송시열이 이곳 보길도에 오게 되는데, 오히려 그는 제주로 유배를 가면서 이곳에 잠시 들리게 됩니다. 한 때, 윤선도를 낙향시키게 만든 장본인이 이번에는 자기가 유배를 가면서 윤선도가 머물던 보길도를 들린 것입니다. 이곳 보길도에 송시열이 쓴 시가 암각된 바위가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우암과 고산이 만나 서로 술잔을 기울였는지는 잘 모릅니다. 허나 인생만사 돌고 도는 회전마차라는 생각에 잠시 고소를 머금게 됩니다.

 

 

 

                                                           송시열 암각시문 안내판

 

  잠깐, 재미로 사설을 붙이면, 당시 정치인들의 유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괜찮은 삶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실세하여 유배를 가지만 정권이 바뀌면 그가 언제 다시 득세할 지 모르니, 지방의 관리들은 당연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며 물심양면 편의를 돌보아 준 경우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훗날 다시 득세하면 자기를 기억하여 달라는 청탁인 셈이지요. 오늘날 야당 정치인들에게도 뇌물을 주는 기업인들의 생리와 똑같은 것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어부사시가는 마치 선계의 신선처럼, 도를 닦는 도인처럼, 고요함을 추구하는 피정을 하는 사람처럼, 정치가 있는 속세를 떠나 다만 자연과 풍류가 있는 정자에서, 바로 세연정에서 지은 노래입니다. 그에게는 어부들의 삶이, 아니 그들과 어우러져서 자연을 즐기는 삶이 이제 추잡한 싸움이 있는 속세와 명리의 삶보다는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나 봅니다. 하여 어부사시사의 주제는 이 속세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계절의 순환 안에서의 자연의 섭리,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광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어부사시가에는 4계절을 각 10수씩 40수로 하고 여음이 붙어 있습니다. 여음은 배를 띄우는 것에서부터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따라 말을 붙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려 후기의 ‘어부가’를 이어받아 다시 창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당시에는 대개 한시로 쓰고 다만 거기 여음을 붙이는 것이 보통인데, 윤선도는 순수한 우리말로 쓴 것이지요.

 

 

 

 

  잘 아시다시피 당시에는 우리말은 주로 서민들이나 쓰고 선비들은 당연 한시로 써야 품격이 높아진다고 생각했지만, 윤선도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며 시조를 썼으니, 당연 높이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그를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인으로 뽑습니다. 그런데 자연과 풍류를 좋아하는 시인이 정치에 뛰어들면 험난한 여로를 걷기 마련이지요. 명리를 버리고 낙향했다는 그도 다시 왕세자들의 사부가 되어 달라는 인조의 명을 받들지요. 상경하여서도 다만 선생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효종의 장례에 대한 예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에 쌓여 다시 유배를 가고 그의 나이 81세에 이르러야 겨우 유배에서 풀려나 보길도로 돌아옵니다. 그는 남은 여생을 보길에서 은둔자적하다가 자기가 만든 책방 낙서재에서 눈을 감게 되지요. 일반적으로 좋게 말하여 그가 워낙 성품이 강직하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여 불의에 타협할 줄 몰라 자주 유배를 당했다고 하지만, 결국 정치에 몸담은 것이니, 제가 그를 온전히 명리를 버린 사람으로 보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가 남긴 시들은 국문학사상 시조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며 학창 시절 순전히 시험을 보기 위해 그의 시조 몇 줄을 외우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우리말의 예술적 가치를 발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어부사시가 일부를 들어 볼까요. 여름이니까 여름노래에서 몇 구절 뽑았습니다.

  고어의 우리말이 아니라 현대어로 풀어 쓴 것입니다. 고어는 너무 어려워서요.

 

 

 

  [1]

궂은비가 멈추어 가고 흐르는 시냇물도 맑아 온다.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낚싯대를 둘러메니 (벌써부터 솟구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흥겨움을 참을 길이 없겠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안개가 자욱한 강과 겹겹이 둘러선 묏부리는 누가 그림으로 그려냈는가?

 

 

 

[2]

연 잎에 밥을 싸 두고 반찬은 장만하지 마라.

<닻을 들어라, 닻을 들어라.>

대삿갓을 쓰고 있다. 도롱이를 가져 왔느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무심한 갈매기는 내가 저를 따르는가? 제가 나를 따르는가?

출처 : 홍천 영혼의 쉼터
글쓴이 : 류해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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