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해석(海石)이 미술품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
“月刊 書藝” 7월호 “해담의 서예만평(66)”에 실린 글입니다.
海石이 美術品으로 解釋될 수 있는가?
해담 오후규(서화 비평가)
바닷가에서 주운 해석(海石), 아무런 인공을 가하지 않은 상태의 해석이 미술품이 될 수 있는가? 어느 날 유명 미술가인 A씨가 어촌을 거닐다 돌담에 놓여있는 해석이 마음에 들어 헐값에 구입하여 해석 전시회에 출품했다면 그것이 A씨의 미술작품이라 볼 수 있겠는가?
1.
지난 5월 21일 대화수석회(大和壽石會, 제23회)와 한국해석회(韓國海石會, 제17회)의 회원전이 있었다(부산 시민회관). 돌의 향기와 마음을 알고 그 심성을 닮고자 하는 정신과 자세, 한 점의 돌에서 끝없이 넓은 우주의 크기를 느끼며 그 창조적 신비를 찾고 즐기자는 것이 수석 애호가들의 생각이다. 수석의 묘는 어떠한 인공도 가해지지 않은 순수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수석에 대해 인간이 소통하고자 하는데 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수석회원들은 작품에 어떤 인공도 가하지 않는다. 자연이 창조한 작품에 어떻게 인간의 손을 더할 수 있겠는가? 마치 우주의 생성에 인공이 가해지지 않는 것처럼 작품으로서의 수석에는 어떤 인공도 가할 수 없으며 오직 자연이 만든 신비,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수석 회원들의 생각이며 불문율이다. 따라서 수석회원들은 수석에 조금이라도 어떤 인공이 가해진 작품은 더 이상 작품으로서 색각하지 않는다. 단지 수석 애호가들은 위대한 자연의 신비성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좌대에 올려놓은 수석을 지판, 화대 등을 더하는 정도로 최소한의 연출, 수석이 본래 그러하듯 단아한 연출만 가할 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비는 돌에서 배움을 구하고자 하였듯이 수석 회원들은 작품으로 완성된 수석을 통해 선비정신을 함양함과 더불어 신묘한 우주의 신비와 소통하는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수석은 작은 하나의 돌에 지나지 않지만 회원들에겐 우주만큼 크고 무겁고 신비롭다. 그래서 수석 애호가들은 인간이 만든 어느 미술작품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수석과 더불어 소요유하고 수석에서 끊임없이 배우며 심성을 도야한다. 해석은 해변에서 돌을 주우면 되는 것이니 자갈돌 많은 부산에서 발전하였다.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서 간단하고 쉬울 수도 있지만 지극히 어렵다.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이니 인간의 힘으로 생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흡족한 수석은 평생 열 손가락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으며 어쩌면 하나도 얻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수석 수집에 이러한 한계가 있음인가 젊은 수석 애호가가 드물고 대부분이 중 장년이다. 이 분야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수석을 앞서서 체계화시킨 일본의 경우도 우리보다 더 심각한 상태라 하니 새로운 수석의 발견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만해준다 할 것이다.
수석을 즐기는 서화가들은 많을 것이나 ‘해석’이라 하면 다소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해석이 수석의 한 장르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이기에 필자가 여기서 한국해석회(韓國海石會)의 전시를 빌어 해석의 미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지 예부터 서화를 사랑하는 선비들이 4군자와 더불어 돌을 가까이 하였다는 점, 그리고 해석은 수석 중에서 비교적 새로운 분야이기에 이에 대한 미학적 관점, 예술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해보되 만담의 수준에서 가볍게 논해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의도이다.
2.
위의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경우를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 확장계획이 있고, 이때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미국인 설치 미술가 B의 작품을 구입하여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대미술관장 C는 비록 B의 작품 값이 대단히 비싸겠지만 일단 현대미술관에 전시만 된다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이고 멀지 않은 장래에 현대미술관의 위상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결국 C관장은 미국을 방문하여 B를 만나 장차 확장할 현대미술관에 대해 설명하면서 작품을 구상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C관장은 B가 쉽사리 자기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자 점심 식사를 하면서 다시 설득할 생각으로 식사를 제안했고 B는 수락했다. 둘이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당으로 가다가 사거리 신호등에 걸려 걸음을 멈추었다. 바로 이때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던 승용차가 대형 버스와 크게 충돌하여 승용차는 형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파손되었다. 이를 B본 C는 에게 말했다. ‘파손된 저 승용차를 구입해 가시오. 그리고 나의 이름을 쓰고 제목을 <언제>라고 하시오.’ 하였다.
드디어 확장공사가 끝난 현대미술관에 C는 B가 말한 대로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된 승용차를 전시하고 B의 이름과 함께 <언제>라는 작품명을 붙여 놓았다면 이것이 미술품이 될 수 있었으며 B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위와 유사한 사건은 일어날 수 있다고 보며, 이 의문에 대한 해답에 접근해 보는 것은 바로 서두에 언급한 해석(海石)의 미술품 여하에 대한 해석이 될 것이다.
(도판3) 정일두 작품.<님의 참묵>
거제도 산. 검은 돌이지만 수정보다
빛나 보이는가 하면 우주의 신비를
함유하고 있는 듯 하다. "님의 참묵"
이라 한 작가의 해석이 훌륭해보인다.
3.
위“2”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자기가 만들지 않은 작품을 자기의 창작품이라 할 수 있는가? 의 문제이다.
사실 모든 인간 문화의 핵심은 창작이고, 특히 서예를 포함한 미술에서는 이것이 최고의 핵심적 문제이다. 이점에 대해 과거 필자가 본고에 다수 언급한 바와 같이 미술에서 흔히 말하는 ‘창작’의 의미는 과학에서 말하는 창작과 그 개념이 다르다. 보편적 개념으로 볼 때 창작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미술작품에 적용될 때 그 개념이 달라진다. 서예의 경우 서예가가 문자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화선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며 먹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닌데 이것들로 구성된 작품을 마치 자기가 처음으로 만든 것 같이 ‘작품을 창작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무엇 때문일까? 어디까지나 서예가들은 지필묵을 사용하여 기존의 문자를 표현할 뿐인데도 ‘창작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또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서두에 대한 더욱 직접적인 답이 될 것이다.
미술 작품의 창작성에 대한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뒤집은 사람은 아마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처음일 것이다. 뒤샹은 “나는 나의 취향이 굳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내 자신을 부정하고자 애썼다.”고 하였듯이 자기의 작품에 끊임없는 변화(창작)를 시도하였다. 그래서 변화 그 자체가 뒤샹의 아이덴티티라 할 정도로 자신의 변화에 끊임없이 노력했다. 심지어 이름조차 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명을 쓰기도 했으니 전통을 벗어난 창작에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뒤샹도 피카소처럼 처음부터 전통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점차 이런저런 전통의 규칙들에 제약받는 것에 싫증난 뒤샹은 전통적인 방식을 뒤엎게 되었고, 나아가 미술가가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대량 생산된 보통의 물건들도 얼마든지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점차 관습적인 미의 기준을 무시하고 미술작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허물자 하였는데, 그 첫 대표적 작품은 1913년에 발표한 <자전거 바퀴>였다. 이 작품은 의자위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놓은 것이었다. 사람이 앉아야할 의자에 사람이 앉아있는 것이 아니고, 땅위에 있어야할 자전거 바퀴가 허공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역발상 아이디어였다.
이러한 뒤샹의 역발상 아이디어 작품중에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남성 소변기로 만든 작품 <샘>이었다. 뒤샹은 뉴욕에 있는 상하수도 설비회사의 공장에서 생산된 남자용 소변기를 구입하여 R. Mutt라고 서명한 후 이를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에서 주최한 전시회에 출품하였다. 여기에서도 뒤샹의 아이디어는 독특했는데, 소변기를 단순히 그대로 전시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상태에서 180도 뒤집어서 높은 단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자전거 바퀴>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 있어야할 곳에 놓이지 않고 새롭고 낮선 곳에 놓일 때 갖는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큰 소란을 야기하였다. 미술작품은 미술가가 직접 만든 것(성과물로서의 창작품)이 라는 전통적 개념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예상된 소란이었다. 에술에 대한 관습적인 접근 방식을 거부하고 다양한 소재들을 활용해 작품화함으로써 과거 시대와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렸음은 물론이고 부르조아의 거만함과 위계질서를 조롱하는 것으로 까지 해석되었으니 뒤샹에 대한 뜨거운 논란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뒤샹의 작품에 대한 소란도 소란이지만 중요한 점은 뒤샹이 이 작품을 통해 ‘레디 메이드(ready made)’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전시작품을 통해 제안하게 되었고, 이후 이 작품은 많은 미술가들에게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뒤샹은 작품 <샘>을 통해 미술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미술가가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작품의 창작에서 작가가 작품을 직접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념과 선택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니 미술에 대한 전통적인 선입견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4.
위의 “3”에서 논한 뒤샹의 이야기는 서두에서 언급한 해석의 예술성에 대한 간접적 설명이 될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1917년 뒤샹의 작품 <샘> 이후 이미 누군가에 의해 완성되어 있는 작품, 공장의 노동자에 의해 대량 생산된 상품에 미술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이 예술품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반면에 미술 창작은 더 이상 물질적인 창작 행위만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인 과정도 미술품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미술가는 자신이 직접 손으로 제작하지 않고서도 임의의 물건, 심지어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저속한 대상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미술관에 소장될 만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어기서 말하는 ‘경우’의 뜻은 그렇다고 모든 레디메이드가 다 미술작품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경우’에 대해서 언급할 때다. 이것도 역시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대량생산되는 공장 제품은 무엇이라도 미술품이 될 수 있는가? 의 문제인데 여기에는 경우의 수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경우란, 레디메이드가 미술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 미술가가 개인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을 필요가 있음과 동시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비평을 또 그것으로써 미술적 특성을 수용해 주는 감상자가 필요하다는 것 이다. 이 말을 바꾸어보면 미술가가 자기의 창작품을 완성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평가가 미술가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특성을 밝혀내고 해석하는 행위가 있다. 이것은 작품 해석에 기여함으로써 작품이 보다 쉽게 일반인과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예술에서 배우와 관객이 있어야 하듯이 서화를 포함하는 미술품에서도 감상자가 미술관(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을 관람함으로 해서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두의 제시 문 “바닷가에서 주운 해석(海石), 아무런 인공을 가하지 않은 상태의 해석이 미술품이 될 수 있는가? 어느 날 유명 미술가인 A씨가 어촌을 거닐다 돌담에 놓여있는 해석이 마음에 들어 헐값에 구입하여 해석 전시회에 출품했다면 그것이 A씨의 미술작품이라 볼 수 있겠는가?”에 대해 이미 비교적 자세히 답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더하라면 전시회에 출품된 ‘그 해석(海石)에 명찰을 붙이고 해석을 가한 것이 바로 그 작가의 창작품이다.’라는 것이다. -이 상-
-지난 5월 대화수석회와 한국해석회의 회원전 개장식에 갔다가 뜻밖에 상면하게 되었던 해담 오 후규 선생. 이 분은 현재 부경대학교 냉동 공학 교수로 재직 중이시며,또한 미학(철학) 박사로 한국 서화문단에 비평가로서 대단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이시지만, 수석에 대해서는 처음 접하신 문외한이시기도 하다. 개장식 날 개략 1시간가량을 머무시면서 몇 가지 질문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을 찍어 가셨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런 글을 쓰실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 글 속에서 수석의 의의와 목적, 해석의 당면 문제, 그리고 해석(海石)의 미술품 여하에 대한 미술학적인 명쾌한 해석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 회원님들께 전달한다.-